수돗물의 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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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물은 어떻게 생겨나고 얼마나 될까요?

처음 물이 생긴 것에 대한 뚜렷한 정설은 없지만 과학자들은 약 46억년 전에 해를 감싸고 있던 가스 구름 속에서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별들이 생겨났고 최초의 지구는 뜨거운 가스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가스가 냉각되면서 수소와 산소의 원자가 안개처럼 한 덩어리로 만났습니다. 이 수증기 안개가 수백년 동안 끊임없이 비를 뿌려 지표면이 식어가면서 단단한 층이 이루어지고 여기서 시냇물이 흘러 둥근 모양의 지구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저기서 일어난 화산 폭발은 산의 형태를 만들었고 이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대륙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물은 최초로 생긴 물질 중의 하나입니다. 물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이기 때문에 지구를 물의 행성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우주공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파란 색이 가장 많습니다.

이유는 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생겨났을 때의 물이 한 방울도 더 늘거나 줄어들지 않았다고 믿고 있답니다.

지구에 있는 물의 양은 13억 8천 5백만㎦정도로 추정되고 있고 이 중 바닷물이 97%인 13억 5천만㎦이고 나머지 3%인 3천5백만㎦이 민물로 존재합니다. 민물 중 69%정도인 2천4백만㎦은 빙산·빙하 형태이고 지하수는 29%인 1천만㎦정도이며 나머지 2%인 1백만㎦가 민물호수나 늪,강,하천 등의 지표수와 대기층에 있습니다.

이 2%의 물 가운데 21%정도가 아시아주에, 26%정도가 미국,캐나다등의 북미주에, 28%정도가 아프리카주에 있으며 나머지 25%의 물은 이 3대주를 제외한 곳에 있습니다. 하천이나 강에 있는 물의 양은 1,200㎦로써 지구 총 수자원의 0.0001%이므로 전체로 보아 매우 적은양입니다. 그래서 수자원 이용측면에서는 이것이 가장 귀중하답니다.

물은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체중 3분의 2가, 근육의 75%가 물이며, 뼛속에만도 22%의 물이 들어 있습니다. 인체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아 평생을 마시는 물의 질이 성격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물이 사람의 성격을 좌우한다고 굳게 믿어온 우리 조상들이 물을 세심하게 골라 마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집의 샘물이 경수,연수냐,감수,고수냐에 따라 성품이 청결하고 탐욕스럽고, 유순하고 고집 세고, 근면하고 게으르고, 정절하고 음탕해지는 성격까지 결정한다고 믿었습니다.

옛날 서울에서는 백호수, 청룡수, 주작수 등의 물을 길어다 파는 도가에 수질을 감별하는 백발노인을 두었습니다. 또 그 물을 사서 마시는 가정집에서도 식구들의 체질에 따라 물을 골라마셨고, 그 값까지 달랐다 하니 물이 성격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이처럼 주의 깊게 다룬 겨레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조상들은 물에 대한 품격도 정해 두었습니다.

충주 달천수가 으뜸이요, 오대산에서 흐르는 한강의 우중사가 버금이며, 속리산에서 흐르는 삼타수를 그 다음으로 친 것이 그것입니다.

홍수를 관측한 세종임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측우기록이 세밀하고 자상한 나라도 없었다는 것은 정설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측우기록인 ‘풍운기’를 보면 비오는 모양의 강약까지 8단계로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우, 세우, 소우, 하우, 쇄우, 취우, 대우, 폭우
가 그것입니다.

각도로 하여금 비가 땅 속 어느 만큼 스몄는가 하는 것까지 측정하여 농정을 베풀도록 했습니다. 또 홍수에 대비하여 강물마다 수표를 세워 수심을 측정하고 폭우가 내리면 강물의 유속을 재어 봉화대로 그 속도를 알려줌으로써 하류지역의 피해를 줄이도록 했습니다.

조선시대 과학적인 방법으로 홍수에 대한 자료를 얻기 위해 설치된 것이 수표입니다. 수표는 세종 23년(1441년)세종대왕께서 서울시내에 있는 청계천과 한강변의 암석 위에 설치하여 홍수의 높이를 관측한 것이 처음입니다. 그 뒤로도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등 전국의 주요 하천에 설치하여 관측하였습니다.

수표는 처음에 나무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돌로 만들었습니다. 그 수표가 지금 하나 남아있는데 그것은 청계천 수표교 서쪽 상류 약 10m 거리에 설치되어 홍수의를 관측하여 왔던 것으로 청계천 복개때 장충단 공원에 이설하였다가 그 뒤 다시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수표는 길이 2m 남짓 직경 30㎝정도인 육각형 돌기둥으로서 1주척마다 직선눈금을 넣어 10척까지 한자로 매척의 높이가 표시되어 있고 당초 수표교에서 바라보이는 면에 3,6,9척마다 8㎝정도의 작은 구멍을 뚫어놓아 멀리서도 쉽게 홍수의 높이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수표는 영조 36년(1760년) 청계천의 홍수범람으로 생기는 시내의 수해를 줄이기 위하여 청계천의 준설 및 유지관리를 전담하는 기구인 준천사를 개설하면서 설치하였던 것으로 추정 됩니다. 수표에 의하여 관측된 홍수위의 기록은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명종 9년(1554년) 7월 15일 「大水韓江水標 二十一尺二寸」으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수표교는 조선 세종 때 청계천에 세운 다리중의 하나입니다. 길이 27.5m 높이4m6모로 된 큰 다리 기둥에 길게 모진 시렁을 얹고 그 사이에 판석을 깔아 만들었습니다.

청계천으로 흐르는 수량을 측정하였던 다리로 다리 돌기둥에 경(庚)-진(辰)-지(地)-평(平)이란 표시를 해서 물의 깊이를 재었습니다.

영조 때에는 다리 동쪽에 있던 준천사란 관아에서 수량의 변화를 한성판윤에게 보고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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